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Abandoned
쓰레기는 쓰레기여서 버려진 것이 아니라 버려졌기에 쓰레기인 것이다. 그 무엇도 쓰레기로 만들어 진 것은 없으며 그 무엇도 스스로 쓰레기가 된 것은 없다. 그렇기에 모든 쓰레기, 버려진 것들의 존재는 버림과 버려짐 간의 권력관계를 증명한다. 부산의 한진중공업이라는 공장에서 400명이 정리해고 되었다. 그들은 회사에 의해 버려졌다고 주장한다. 만일 이 주장이 참 이라면 그것은 누군가가 그들을 버리기로 결정했다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. 혹자는 “희망퇴직”이라 하고 또 다른 혹자는 “정리해고”라 하지만 나는 이것을 일반화해 그저 “버려짐”으로 이해하고 해석해보기로 한다. 이 버려짐에 대한 저항의 상징은 35미터 높이의 크레인 위에서 한 여성이 309일 동안 농성을 하는 방식으로 표출되었다. 누군가가 버려졌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들을 버렸음을 의미한다. 그리고 이것은 결국 누군가는 누군가를 버릴 수 있는 권력이 있음을 의미한다. 다시 말하면 누군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엇 혹은 누군가를 버릴 수 있지만 또 다른 무엇 혹은 누군가는 버려짐을 거부할 수 없는 구조 속에 있다는 것이다. 이 일방적 관계 속에서만 서로 다른 무엇 혹은 누군가의 버림과 버려짐이 가능해 진다. 현대사회에서는 수많은 것들이 버려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버려진다. 나는 주변의 버려진 쓰레기들과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을 병렬배치 함으로써 이 불안한 동질성에 주목한다. 버림의 권리만이 존재하고 버려짐에 대한 거부의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 구조의 모순에 의문을 던진다. 이 권리는 어디로부터 기인하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이 모순적 구조의 해소는 어디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 고민한다. 결국 내가 버려지지 않기 위한 고민이기도 하다. ![]() ![]() ![]() ![]() ![]() ![]() ![]() ![]() ![]() ![]() ![]() ![]() ![]() ![]() ![]() ![]() ![]() ![]() ![]() ![]() |